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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플로리다의 작은 술집에서 여섯 명의 평범한 아저씨들이 모였다. 맥주잔을 기울이며 “싼 건물 하나 인수해 술집이나 해보자”는 농담 섞인 제안에서 시작된 아이디어가 연매출 10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브랜드 후터스(Hooters)로 성장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만우절 장난처럼 출발한 이 가게는 특유의 오렌지색 핫팬츠와 흰색 민소매 차림의 ‘후터스 걸(Hooters Girl)’로 미국 전역을 휩쓸며 하나의 문화 아이콘이 됐다.
후터스의 성공 비결은 단순했다. 스트리퍼 대신 동네 치어리더나 인근 대학의 인기 여학생을 채용해 ‘옆집 누나 같은 발랄한 매력’을 무기로 내세웠다. 고객은 호기심에 가게 문을 열었지만, 자리에 앉으면 바삭한 치킨 윙과 시원한 맥주에 빠져들었다. 실제로 후터스의 치킨 윙은 뉴욕 버팔로 윙 페스티벌에서 수차례 수상하며 ‘세계 최고 윙’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성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미국 연방정부는 남성 웨이터를 고용하지 않는 점을 문제 삼아 소송을 제기했다. 후터스는 “우리는 단순 종업원이 아닌 ‘모델’ 역할을 고용한 것”이라며 맞섰고, 기발한 여론전을 통해 정부를 조롱거리로 만들며 결국 승소했다. 이 사건은 후터스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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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후터스는 아시아 시장 교두보로 서울 압구정을 택했다. 본사는 ‘옆집 치어리더 콘셉트’가 한국에서도 통할 것이라 믿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개점과 동시에 여성단체의 거센 반발이 이어졌고 언론은 연일 ‘선정성 논란’을 다뤘다. 미국에서 후터스 걸은 무대 위 배우처럼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였지만, 한국 고객에게는 유흥업소 종업원과 다르지 않게 보였다. 무대와 객석을 구분하는 문화적 경계가 사라진 순간, 후터스는 ‘룸살롱 유사업소’라는 낙인을 피할 수 없었다.
여기에 또 다른 문제가 겹쳤다. 당시 한국 후터스에서 근무한 여성들은 미국 후터스 걸들이 보여주던 ‘건강미 넘치는 치어리더 이미지’와 비교해 외모나 체형 등에서 차이가 컸다. 결국 손님들에게 큰 매력 포인트를 주지 못했고, 본사가 기대했던 ‘이미지 효과’는 반감됐다. 후터스가 의도한 ‘친근한 판타지’는 한국에서는 어정쩡한 콘셉트로 변질돼 버린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후터스의 진짜 무기는 주황색 핫팬츠가 아니라 치킨 윙이었다. ‘벌거벗은 닭날개’라는 별칭의 메뉴는 이중 조리법으로 겉은 감자칩처럼 바삭하고 속살은 백숙처럼 촉촉했다. 뉴욕에서 이미 수차례 수상하며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 맛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통할 만했다.
하지만 후터스는 문화적 맥락과 현지인의 시선을 읽지 못했고, 인력 구성까지 전략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 결국 ‘치킨 맛집’으로 자리잡을 기회조차 잡지 못한 채, 한국에서는 흉가 체험 같은 호기심 공간으로 전락해 조용히 철수했다.
후터스의 한국 실패는 음식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오해와 이미지 관리 실패에서 비롯됐다. 글로벌 브랜드의 성공 공식이 언제나 보편적이지는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