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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한 조각, 초코파이 한 개. 미국 법정에서는 이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감과 정의 실현의 계기로 만들었지만, 한국에서는 국가 사법 시스템을 총동원해 항소심까지 이어지는 비극적 풍경으로 변했다.
1930년대 뉴욕의 라과르디아 판사는 빵을 훔친 노파에게 벌금 10달러를 선고하면서도 “이 여인을 굶주리게 한 사회 전체가 유죄”라며 자신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 노파를 도왔다. 판결은 법대로였지만, 그 안에는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있었다.
미국 로드아일랜드 주의 프랭크 카프리오 판사 역시 마찬가지다. 교통법규 위반 사건을 다루면서도 그는 늘 사람의 사정을 먼저 들었다. 어느 날 병원에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주차 위반을 한 아버지에게, 카프리오 판사는 “당신은 위반했지만, 그 위반은 사랑 때문이었다”며 벌금을 감경했다. 또 가난한 청년이 내지 못할 벌금 앞에서 그는 “이 사회가 당신을 더 도와야 한다”며 스스로 책임을 나눠 가졌다. 그의 법정은 ‘두려움의 공간’이 아니라 ‘공감과 회복의 공간’으로 불렸다.
라과르디아 판사/사진=구글
대한민국 사법부의 구조적 문제
① 법조인 양성의 협소한 틀
사법시험 폐지 이후 로스쿨 체제가 도입됐지만, 막대한 학비와 좁은 입학 문턱은 법조인의 사회적 다양성을 가로막고 있다. 대부분 엘리트 경로를 밟은 판·검사들이 국민 생활 현실에 대한 감각 없이 법조문만 기계적으로 적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회적 약자에 공감하는 판결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다.
② 국민참여재판의 유명무실
2008년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 평결에 실질적 구속력이 없다. 판사의 권고적 참고에 불과하다 보니 국민 상식이 법정에서 반영되기 어렵다. 초코파이 사건과 같은 ‘과잉 사법’은 결국 법관 개인의 해석이 절대 권위를 유지하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③ 전관예우의 고질병
한국 사법부의 신뢰를 갉아먹는 가장 뿌리 깊은 문제는 ‘전관예우’다. 고위 판·검사가 퇴직 후 변호사로 개업하면, 현직 법조인들이 사실상 특혜를 주는 관행이 여전히 남아 있다. 전관예우는 사회적 약자의 사건에는 무관심하면서, 권력과 자본이 결합한 사건에는 여전히 ‘봐주기 판결’ 논란을 낳는다. 이는 사법부에 대한 국민 불신을 심화시키는 구조적 원인이다.
프랭크 카프리오 판사/사진=구글
따뜻한 정의를 위한 개혁
배심원 평결의 구속력 강화: 국민참여재판을 형식적 제도가 아닌 실질적 제도로 만들기 위해, 배심원 평결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해야 한다.
법조인 양성 다양화: 로스쿨 진입 장벽을 낮추고 다양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 인재들이 판·검사로 진출할 수 있도록 개혁이 필요하다.
전관예우 근절: 퇴직 판·검사의 변호사 개업 제한을 강화하고, 사건 수임 제한 제도를 실효성 있게 운영해야 한다.
사법 인사제도 개혁: 승진 중심 인사 구조를 바꾸어 ‘공익적 판결’과 ‘사회적 기여’를 주요 평가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라과르디아와 카프리오 판사가 보여준 판결은 단순한 미담이 아니라, 법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사례다. 한국 사법부는 여전히 ‘법대로’라는 차가운 방패 뒤에 숨으며 국민을 법의 적으로만 대하고 있다. 초코파이 사건은 단순한 절도 사건이 아니라, 한국 사법 시스템이 형식적 정의에 갇혀 본질적 정의를 외면한 사회임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국민은 법정에서 법의 냉정함만이 아니라 인간적 온기를 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기대는 여전히 ‘전관예우’와 ‘사법 엘리트주의’ 속에서 무너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