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출시된 국내 최초의 삼양라면/이미지=삼양식품
‘소기름(우지)으로 튀긴 라면’이 36년 만에 부활한다. 삼양식품은 내달 신제품 ‘삼양라면 1963’을 출시하며, 1989년 ‘우지 파동’ 이후 중단됐던 우지 라면을 다시 선보일 예정이다. 이름에 담긴 ‘1963’은 삼양라면이 처음 세상에 나온 해이자, 한국 라면의 역사가 시작된 해를 의미한다.
1989년 ‘우지 파동’은 한국 식품산업 역사에서 가장 억울한 사건으로 꼽힌다. 당시 익명의 투서로 “공업용 우지를 사용했다”는 내용이 검찰에 접수되면서, 삼양을 비롯한 라면 제조사들이 대대적인 수사를 받았다.
‘공업용’이라는 단어는 소비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고, 언론은 사실 확인보다 자극적인 보도 경쟁에 뛰어들었다. “공장용 기름으로 라면을 튀겼다”는 식의 오보가 이어지며 여론은 순식간에 삼양식품을 범죄 기업으로 몰아갔다.
하지만 보건사회부 조사 결과, 해당 우지는 인체에 해가 없는 정제된 소기름으로 확인됐다. 이후 재판에서도 모든 혐의는 무죄로 결론 났다. 1995년 고등법원 무죄 판결에 이어 1997년 대법원이 이를 확정하면서, 삼양식품은 완전히 누명을 벗었다.
문제는 너무 늦었다는 점이었다. 이미 여론은 돌아섰고, 삼양식품은 ‘우지 라면 회사’라는 낙인 속에서 수십 년간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1위였던 라면 시장 점유율은 순식간에 무너졌고, 후발주자들에게 자리를 내주며 기업 존립마저 위태로웠다.
당시 법조계와 언론계가 검증되지 않은 정보로 기업의 명예를 훼손하고, 이후 진실이 밝혀져도 책임을 회피했던 행태는 지금 돌아봐도 부끄럽다. ‘공업용’이라는 단어 하나가 한 기업의 역사를 30년 넘게 흔들었다는 사실은 언론사와 사법기관 모두에게 무거운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삼양식품은 이번 신제품을 통해 단순히 옛 라면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재해석된 ‘프리미엄 라면’을 내놓는다.
삼양라면 1963은 우지로 면을 튀겨 고소한 풍미를 살리는 동시에, 삼양 국물라면 중 최초로 우골(소뼈) 액상 스프를 별첨해 진한 국물 맛을 구현했다. 단순한 향수 자극이 아니라, 현대적인 미각과 품질 기준에 맞춘 고급화 전략이다.
가격 또한 기존 삼양라면(700원대)의 두 배 이상이 될 전망이다. 우지는 팜유보다 원가가 높지만, 특유의 풍미와 깊은 맛이 있어 ‘프리미엄 라면’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신라면 블랙처럼 1500원 안팎의 가격대가 예상된다.
이번 재출시는 단순한 제품 복원이 아니라, 삼양식품이 과거의 억울함을 스스로 정면 돌파하는 선언이다.
‘공업용 우지’라는 낙인은 사실이 아니었고, 삼양은 1990년대 이후에도 꾸준히 품질 개선과 위생관리를 통해 글로벌 라면 기업으로 성장했다. 불닭볶음면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으며 글로벌 1조 매출을 달성한 지금, 삼양은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가 ‘한국 라면의 시작점’을 재조명하고 있다.
이번 우지 라면의 부활은 단순한 레트로 마케팅이 아니다. 잘못된 역사적 오해를 바로잡고, 한국 식품산업의 불합리했던 프레임을 해소하는 상징적인 행보다.
과거의 ‘억울한 피해자’였던 삼양이, 이제는 자신 있게 ‘정통의 복귀자’로서 자존심을 회복하는 순간이다.
삼양식품의 이번 시도는 용기 있는 도전이다. 수십 년간의 오해를 바로잡고, 진짜 맛으로 증명하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우지는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 또한 팩트와 거리가 멀다. 오히려 팜유보다 포화지방 비율이 낮고,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차이가 없다는 점이 여러 연구로 밝혀지고 있다.
‘삼양라면 1963’은 한 기업의 재도전이자, 한국 사회가 과거의 왜곡된 기억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지 파동으로부터 36년, 이제는 진실이 재평가받을 때다. 삼양의 부활은 단순한 상품 출시가 아니라, 잘못된 역사에 대한 통쾌한 복권이다.
이제 남은 건 소비자의 평가뿐이다. 오랜 세월 억울했던 기업이 다시금 진심으로 만든 한 그릇의 라면이, 세상에 제대로 인정받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