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의 이근안 모습/사진=방송사 화면 갈무리
군사정권 시절 강압 수사와 고문으로 악명을 떨쳤던 이근안 전 경감이 88세로 숨졌다. 생전 그의 행적은 한국 현대사에서 국가 폭력의 상징적 사례로 남아 있지만, 피해 회복과 책임 이행은 끝내 완결되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지난 26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근안은 최근 건강 악화로 요양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사망했다. 전립선암과 신장 질환 등 복합 질환을 앓으며 혈액 투석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근안은 1970~80년대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근무하며 민주화 인사와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강압 수사를 주도했다. 물고문과 전기고문, 관절 훼손 등 가혹 행위를 통해 허위 자백을 받아내는 방식으로 사건을 조작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1979년 남민전 사건, 1985년 김근태 고문 사건 등 굵직한 사건에 관여한 인물로 지목되며 1986년에는 옥조근정훈장을 받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 수사가 본격화되자 그는 사표를 내고 잠적했다. 이후 약 11년간 도피 생활을 이어가다 1999년 자수했으며, 고문과 불법 구금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았다. 2006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다.
문제는 출소 이후 행보다. 그는 공개 발언과 저서를 통해 일부 반성을 언급했지만, 피해자와 유족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사과는 없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오히려 과거 고문 행위를 축소하거나 정당화하는 취지의 발언이 이어지면서 논란을 키웠다.
그가 관여한 사건 상당수는 이후 재심을 통해 조작으로 드러났다. 김제 가족 간첩단 사건 등에서는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이 인정됐고, 법원은 국가 배상 책임을 판결했다.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지급한 배상금 일부를 이근안 개인에게 구상권으로 청구했지만, 그는 재산이 없다며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결국 그의 사망은 개인의 생을 넘어, 국가 폭력 가해자의 책임을 어떻게 완결할 것인가라는 과제를 다시 남겼다. 피해자 구제와 역사적 평가가 일정 부분 이뤄졌음에도, 실질적인 배상과 진정성 있는 사과가 결여된 채 사건이 종결된 점은 여전히 논쟁 지점으로 남는다.
이번 사망을 계기로 과거사 청산의 한계와 제도적 보완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다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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