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도서 속으로] "국가는 국민을 포기하지 않았다"
  • 편집국
  • 등록 2025-04-29 00:02:01
  • 수정 2025-04-29 00:06:04

기사수정
  • - 『1975 사이공 대탈출』이 기록한 대한민국 해군의 숨은 역사

1975 사이공 대탈출 도서 표지


사이공, 붕괴 직전의 도시

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은 무너졌다. 베트남 전쟁의 종전과 함께 남베트남이 붕괴되고, 수도 사이공(현 호찌민)은 포성과 아수라장이 뒤엉킨 거대한 난민 수용소가 되어버렸다. 미군은 ‘프리퀀트 윈드 작전’을 발동해 헬기를 통한 대피 작전을 개시했지만, 시민과 외국인, 패잔병이 뒤엉킨 대혼란 속에서 작전은 큰 난항을 겪었다.


당시의 긴박하고 절망적인 현장은 이후 수많은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통해 재구성됐다. 특히 미국 영화 '지옥의 묵시록'(1979)은 베트남전의 광기와 혼돈을 상징적으로 그려냈고, 한국 SBS창사 3주년 특집극 '머나먼 송빠강'(1993)은 전쟁의 상흔이 남은 베트남을 통해 당시 참혹했던 상황을 냉정히 조명했다. 사이공 붕괴는 단순한 한 도시의 몰락이 아니라, 한 시대 전체가 무너지는 상징이었다.


1975년 사이공을 탈출하는 사람들이 주 베트남 미국대사관의 헬기에 탑승하는 모습/사진=구글

대한민국,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움직이다

이런 절망적 상황 속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전례 없는 결단을 내렸다. 베트남에 남은 한국 교민과 대사관 직원, 그리고 한국과 연을 맺은 현지인들을 철수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이름 없는 작전이 바로 ‘십자성 작전’이다.


『1975 사이공 대탈출』(하다출판, 이문학·정호영 공저)은 이 감춰진 작전의 전말을 복원해낸다. 해군 작전과장이었던 이문학 예비역 중령의 생생한 증언과, 국방 전문 기자 정호영 작가의 치밀한 자료 조사로 만들어진 이 책은, 단순한 전쟁 기록을 넘어 국가와 국민 사이의 약속을 다시 묻는 작업이다.


파견된 두 척의 상륙함(LST)은 극도의 보안 아래 사이공으로 접근했고, 미군 작전과도 은밀히 조율해 1,902명의 한국인과 베트남 피란민을 구출했다.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은 이 작전은, 한국 해군 사상 유례없는 기적이었다.


1975년 계봉함이 한국 교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베트남을 향해 출항하는 모습/사진=구글 베트남전, 잊힌 전쟁의 그림자

이 책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베트남전 파병을 둘러싼 대한민국 현대사 전체를 되돌아보게 한다. 미국 영화 '플래툰'(1986)이 보여준 병사들의 고통과 회의, 한국 영화 '알포인트'(2004)가 그려낸 심령적 공포는 모두 베트남전이 남긴 깊은 상처를 상징한다.


대한민국은 1960~70년대 베트남전에 대규모 파병을 단행했고, 이는 단순한 군사 참여를 넘어, 당시 경제 개발 자금 확보와 한미동맹 강화라는 전략적 목표와 직결돼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파병 장병들은 고된 전투뿐 아니라, 귀국 이후에도 사회적 냉대와 무관심이라는 이중 고통을 겪었다.


『1975 사이공 대탈출』은 이러한 복합적 맥락 위에 십자성 작전이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교민 철수라는 긴급 임무는 외교적 민감성을 극복해야 했고, 미국의 눈치를 보아야 했으며, 무엇보다 절망에 빠진 이들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 군인의 사명을 요구했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사진=구글국가의 결단, 군인의 사명

책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출항이 결정된 과정, 해군 지휘부의 판단, 사이공 현지 대사관의 긴박한 대응, 미군과의 협조 및 갈등까지 세밀하게 복원해낸다.


미국은 사이공 철수를 헬기 작전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지상에서의 피란민 이동은 스스로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틈을 대한민국 해군이 메웠다. 사이공 대사관과 해군 수송팀은 간신히 남은 틈을 파고들어, 교민과 피란민을 포탄이 떨어지는 도시에서 군함까지 이송했다.


국가가 국민을 위해 이처럼 단호히 움직였던 사례는, 이후 2021년 아프가니스탄 '미라클 작전', 2023년 수단 '프라미스 작전' 등 재외국민 철수 작전의 선례로 자리 잡았다. 십자성 작전은 대한민국 해외 위기 대응 체계의 출발점이었다.


머나먼 쏭바강의 한장면/사진=구글

30년 넘게 숨겨진 영광

십자성 작전은 철저히 은폐됐다. 사이공에 잔류한 한국 공관원들과 남은 베트남인들에 대한 외교적 부담,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신중한 조치였다. 결국 이 위대한 작전은 군사기밀로 지정되어, 2006년까지 세상에 드러나지 못했다.


『1975 사이공 대탈출』은 이 억울한 침묵을 깨뜨린다. 참전 장병들의 명예를 복원하고, 역사의 공백을 메운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 이들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제시한다.


오늘을 위한 기록

하다출판사 관계자는 이 책에 대해 “단순한 군사 작전 기록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 사이의 약속을 지켜낸 한 시대의 답변”이라고 말했다. 책은 과거의 기록을 넘어, 지금 우리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국가는 위기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감수할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희생과 결단을 잊지 않고 있는가.


『1975 사이공 대탈출』은 전쟁의 참혹함을 넘어, 국가의 본질을 다시 묻는 책이다. 이 숨겨진 승리는 이제야 비로소,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살아나기 시작했다.


하다출판사 관계자는 “이 책은 단순한 전쟁 기록이 아니라, 국가가 위기 속에서 국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시대적 답변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 HadA(하다)는 (주)늘품플러스의 대표 출판브랜드이며, 2004년 사업을 시작한 이래, 깊이 있는 콘텐츠와 기획력으로 다양한 분야의 도서를 선보여온 출판사이다. 대표 브랜드인 ‘HadA(하다)’와 ‘늘품플러스’ ‘책밭’을 중심으로, 교육·인문·사회·정치 등 다양한 주제의 단행본 210여 종을 출간해 왔으며, 창의적이고 실용적인 콘텐츠를 통해 사람과 사회를 연결하고, 지식의 가치를 넓혀가고자, 독자들에게 통찰과 공감을 전하는 책을 꾸준히 만들어가고 있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최신뉴스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세계인플루언서협회 공식 출범…글로벌 산업 네트워크 강화 나서 지난 3일 세계인플루언서협회가 공식 출범을 알렸다. 협회는 급성장하는 인플루언서 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국제적 비즈니스 트렌드에 발맞춘 협력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현재 인플루언서 산업은 개인 블로거 중심의 활동을 넘어 전문 에이전시, 콘텐츠 제작사, 행사·이벤트 기획사 등으로 확장하며 다.
  2. 빗썸, 정우성·전종서 브랜드 모델 발탁 배우 정우성과 전종서가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의 새로운 얼굴이 됐다. 빗썸은 11일 두 배우를 브랜드 모델로 선정했다고 밝혔다.정우성은 다양한 장르에서 꾸준히 새로운 도전에 나서며 신뢰감을 쌓아온 대표 배우다. 전종서는 독창적인 개성과 세련된 이미지로 주목받으며 차세대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두 배우의 만...
  3. 차인표, 소설 ‘인어사냥’으로 황순원문학상 신진상 수상 황순원기념사업회는 지난 5일 수상 결과를 발표했다. 작가상은 주수자의 ‘소설 해례본을 찾아서’, 시인상은 김구슬의 ‘그림자의 섬’, 신진상은 차인표의 ‘인어사냥’, 황순원 양평문인상 대상은 강정례의 시집 ‘우리 집엔 귀신이 산다’가 각각 선정됐다.차인표는 전날 인스타그램을 통해 “제 소설을 읽..
  4. 버스 안내양, 그리고 사라진 목소리를 그리워하며 “이번 정거장은 개봉 사거리입니다~ 내리실 분 없으면 오라이~.”1980년대 서울 시내를 달리던 버스 안, 안내양의 목소리는 도시의 소음 속에서도 유난히 따뜻하게 들렸다. 정류장을 알리고, 승객의 요금을 거두고, 때로는 아이의 손을 잡아주던 안내양은 단순한 직업인이 아니라 버스라는 작은 세계의 ‘친절한 주인공’이었다....
  5. 엄정숙 변호사 "전세금반환소송 지연이자 '5%→12%' 급변…약정이자 활용해야"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이 소송을 제기할 때 가장 관심을 갖는 것 중 하나가 '지연이자'다. 임대인이 전세보증금 반환을 늦출 때 언제부터 얼마의 이자를 받을 수 있느냐는 실질적 손해와 직결되기 때문이다.2024년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전세금반환소송 본안소송 접수는 2023년 7,789건으로 전년(3,720건) 대비 약 109.4% 급증했.
  6.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 이지호, 해군 학사사관 후보생 입영식 참여 9월 15일, 경남 창원시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해군 학사사관 후보생 입영식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 이지호씨가 참석했다. 이씨는 이날 입영식에서 해군 장교가 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씨는 복수 국적을 보유한 상태로, 장교로 복무하기 위해 미국 시민권을 포기한 바 있다.입영식에는 이지호씨의 어머니인 임세령 대상그..
  7. 셀트리온, 바이오 헬스 아카데미 프로그램 ‘셀온’ 1기 돌입, 이달 17일까지 지원자 모집… 바이오 산업 맞춤형 … 셀트리온은 바이오 산업 성장에 필요한 인재 수요에 대응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바이오 헬스 아카데미 ‘셀온(Cell-On)’ 1기를 모집한다고 15일 밝혔다.이번 프로그램은 보건복지부가 총괄하고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바이오 헬스 아카데미 프로그램 운영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셀트리온은 ..
  8. 보톡스, 일상 속 시술이지만 ‘정품·정량’ 오해 여전 보톡스는 주름 개선뿐 아니라 턱선 정리, 승모근 이완 등 다양한 미용 목적에 활용되며 이미 일상적인 시술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대중화된 만큼 ‘정품’과 ‘정량’에 대한 오해도 적지 않다.전문가들에 따르면, 국내에서 유통되는 보톡스는 모두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받은 정식 제품이다. 흔히 말하는 ‘가짜 보톡.
  9. “초코파이 1050원 절도 사건, 법정까지 간 이유는?”....재판부, 항소심에서도 논의 예정 지난 18일 전주지법 제2형사부에서 열린 항소심 첫 재판에서, 회사 냉장고에서 1050원어치의 간식을 꺼내 먹었다는 혐의로 기소된 협력업체 직원 김모 씨의 사건이 다뤄졌다. 김 씨는 초코파이(450원)와 커스터드(600원)를 꺼내 먹은 혐의로 절도죄로 기소되었으며, 이 사건은 법정까지 가게 된 배경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불러일으켰다.변호..
  10. 서울, ‘러닝 크루’에 대한 규제 강화…공공장소에서의 안전 문제 서울 곳곳에서 ‘러닝 크루’ 활동이 유행하면서 시민들 사이에서 불편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서울시와 구청들이 이를 겨냥한 주의문을 설치해 온라인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특히, 러닝 크루의 활동으로 인해 교통사고나 시민들의 불편이 발생하면서 각 지역에서는 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서초구, 5인 이상 단체 달.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