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의학신문
비만이 단순한 체중 초과가 아닌 ‘만성질환’으로 새롭게 정의되며 의료계와 공중보건 정책에 큰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임수 교수가 참여한 국제 전문가 그룹 ‘란셋 당뇨병·내분비학 위원회’는 비만을 신체 기관과 조직에 손상을 일으키는 만성적이고 전신적인 질병으로 규정하고, 이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새로운 기준을 발표했다.
기존의 체질량지수(BMI) 중심 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장기 및 조직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포괄적 진단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다. 이 같은 변화는 비만 치료와 관련된 패러다임을 완전히 전환할 것으로 전망된다.
위원회는 비만을 “과도한 체지방량으로 인해 신체 기관의 기능이 비정상적으로 저하되는 만성적이고 전신적인 질병 상태”로 정의했다. 비만은 심장마비, 뇌졸중, 심부전 등 생명을 위협하는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는 질병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비만은 생활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유전, 호르몬, 환경적 요인 등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위원회는 비만을 두 가지 단계로 구분했다. ▲‘임상적 비만병(Clinical Obesity)’: 비만으로 인해 신체 기관이나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태, ▲‘임상적 비만병 전단계(Preclinical Obesity)’: 아직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미래에 건강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는 상태다. 각 단계에 맞는 적절한 치료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위원회는 기존 BMI의 한계를 명확히 지적했다. BMI는 키와 몸무게만을 기반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개인의 체지방 분포나 신체 기능장애 여부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BMI는 인구 집단 수준의 건강 위험 평가나 선별검사 도구로만 사용하고, 개인별 진단에는 추가적인 측정 방법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구체적으로 ▲허리둘레, ▲허리-엉덩이 비율, ▲허리-키 비율 등을 활용하거나 체지방을 직접 측정하는 방법을 병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만 BMI가 40kg/m² 이상일 경우 과도한 체지방량이 명확하기 때문에 추가 검사는 불필요하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임상적 비만병을 진단하기 위한 구체적인 기준도 제시했다. 다음 두 가지 중 하나 이상이 확인되면 임상적 비만병으로 진단할 수 있다. 비만으로 인해 중요 장기의 기능 감소 증거,비만으로 인해 신체활동이나 일상생활의 기본 활동(목욕, 옷 입기, 화장실 사용, 자가 배변, 자가 식사 등) 제한 등 이러한 기준은 비만을 단순한 체중 관리 문제로 보지 않고, 신체적·사회적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방향으로 마련됐다.
임수 교수는 “비만을 개인의 책임이나 잘못된 생활습관 탓으로 돌리는 편견과 낙인이 효과적인 예방과 치료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비만은 다학제적 접근과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 공중보건 전략이 필요한 질병”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체중 기반의 차별과 낙인을 줄이는 것이 비만 예방과 치료의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전 세계 58명의 다학제 전문가들 간에 높은 수준의 합의를 통해 진행되었으며, 전 세계 75개 의학회 및 환자단체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이러한 국제적 협력은 비만 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