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왕좌의 게임, 필리핀 정치: 두테르테의 몰락과 봉봉의 칼날
  • 편집국
  • 등록 2025-07-22 02:45:00

기사수정
  • - 국제형사재판소에 넘겨진 전직 대통령, ‘두테르테 체포’로 폭발한 가문 정치의 민낯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왼쪽), 사라 두테르테(오른쪽)/사진=AI“나를 헤이그로 데려가려면 차라리 죽여라.”

2025년 3월, 마닐라 국제공항에서 체포되던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은 이렇게 외쳤다. 79세 노정객이 공항에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넘겨지는 그 장면은 필리핀 정치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 체포극은 단순한 법 집행이 아니다. 이는 봉봉 마르코스 현 대통령과 두테르테 가문 간의 권력 전쟁이자, 필리핀 정치가 본질적으로 ‘가문 대 가문’의 피 튀기는 게임임을 다시금 증명한 사건이다.


마약과의 전쟁, 그리고 체포까지

로드리고 두테르테는 2016년부터 2022년까지 필리핀을 이끈 대통령이다. 그가 내건 대표 공약은 ‘마약과의 전쟁’이었다. 투항하지 않는 마약 용의자는 현장에서 사살하라는 그의 지시는 국내외에서 ‘사법살인’ 논란을 불렀다.


공식 발표된 사망자는 6천여 명. 인권단체들은 실제 희생자가 3만 명을 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반인륜범죄 혐의로 수사에 착수했고, 결국 ICC가 발부한 체포영장을 필리핀 정부가 집행하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문제는 체포 주체가 바로 현직 필리핀 정부였다는 점이다. 전직 대통령을 자국 정부가 직접 체포해 국제법정에 넘겼다는 사실은 단순한 법 집행 이상의 정치적 맥락을 내포하고 있다.


마르코스 vs 두테르테, 북부와 남부의 전쟁

필리핀 정치의 특수성은 철저한 ‘가문 정치’에 있다. 대통령을 배출한 주요 가문만 해도 마르코스, 아키노, 아로요, 오스메냐, 그리고 두테르테 가문이 있다. 이들 가문은 각자의 지역 기반을 바탕으로 수십 년간 대를 이어 권력을 이어왔다.


그중 마르코스 가문은 필리핀 북부를, 두테르테 가문은 남부 민다나오 지역을 기반으로 한다. 2022년 대선에서 두 가문은 손을 잡았다. 마르코스의 아들 ‘봉봉’이 대통령, 두테르테의 딸 사라가 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북부와 남부의 연합이자, 두 왕조의 동맹이었다. 그러나 권력은 나눌 수 없었다.


대선 당시 사라는 봉봉에게 “부통령과 국방부 장관을 겸직하겠다”고 약속받았다. 하지만 봉봉은 약속을 깨고 그에게 교육부 장관직을 맡겼다. 이후 두 가문 간의 균열은 격해졌고, 사라는 공개석상에서 “우리는 더 이상 아군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이후 사라와 봉봉은 상호 비방전을 주고받으며 ‘정부 내 내전’ 수준의 갈등을 드러냈다.


“몸과 머리를 분리하겠다”... 필리핀판 정치 패륜극

갈등은 정치적 격돌을 넘어섰다. 사라 부통령은 봉봉 대통령을 향해 “필리핀을 지옥으로 이끌고 있다”며 독설을 퍼부었고, 마르코스 가문에 대한 조롱을 넘어 “그의 아버지 유해를 파내 바다에 버릴 것”이라는 극단적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이 암살당할 경우 대통령과 그의 가족을 죽이도록 암살조와 이미 계약을 맺었다”는 폭탄 발언도 터졌다. 필리핀 정부는 즉시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중대한 발언”이라며 사라를 탄핵하겠다고 맞섰고, 2025년 2월 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됐다.


체포는 선거를 위한 정치적 카드인가

이런 상황 속에서 전 대통령 두테르테는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복귀를 선언하며 다시 다바오 시장 출마를 공식화했다. 동시에 필리핀 상원의 12석이 걸린 중간선거도 예정돼 있다. 사라 탄핵의 향방, 두테르테 가문의 정치적 생존은 이번 선거에 달렸다. 이 와중에 벌어진 두테르테 체포는 ‘법적 정의’로만 보기엔 타이밍이 너무도 절묘하다.


게다가 ICC는 자력으로 체포를 집행할 수 없는 국제기구다. 실제 집행은 ‘해당 국가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필리핀 정부가 ICC의 요청을 수용해 두테르테를 넘긴 행위는 그 자체로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ICC는 누구를 잡아가고, 누구를 못 잡는가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반인륜범죄, 전쟁범죄 등을 다루지만,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ICC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에게도 체포영장을 발부했지만 현실적으로 이들을 체포하지 못하고 있다. 


푸틴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 후 러시아는 “헤이그에 핵을 쏘겠다”는 위협을 날렸고, 미국은 네타냐후 기소에 반발하며 “ICC를 제재하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ICC가 실질적으로 체포할 수 있는 대상은 ‘국가 내부 권력으로부터 버림받은 인물’뿐이다. 두테르테가 딱 그 경우다.


필리핀 정치, 어디로 가는가

로드리고 두테르테의 체포는 단순한 인권 범죄에 대한 단죄가 아니다. 그것은 필리핀이라는 나라가 여전히 가문 중심의 정치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정치적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법과 국제기구마저 도구화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선거 결과에 따라 두테르테 가문이 다시 반격에 나설 수도, 완전히 몰락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필리핀 정치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게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최신뉴스더보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배스킨라빈스, ‘X-mas 패커블 패딩 블랭킷’ 크리스마스 굿즈 공개 SPC 배스킨라빈스가 2025 크리스마스를 맞아 특별한 굿즈를 공개했다. 바로 영국 헤리티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헌터(Hunter)’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X-mas 패커블 패딩 블랭킷’이다. 이 굿즈는 배스킨라빈스의 크리스마스 캠페인 ‘홀리데이 판타지(Holiday Fantasy)’의 일환으로 출시됐다.‘헌터’와의 세 번째 협업 .
  2. 겨울철 급증하는 심근경색… “가슴 통증 20~30분 지속되면 즉시 119” 기온이 뚝 떨어지는 겨울철에는 혈관이 수축해 혈압이 오르고, 이로 인해 심장혈관 질환 위험이 크게 높아진다. 전문가들은 가슴 통증이 20~30분 이상 이어질 경우 심근경색을 의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한 심장내과 전문의는 “겨울에는 심장혈관이 반복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심근경색 발생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
  3. 반복되는 두피 가려움과 염증, 지루성두피염 의심해야 머리를 감고 하루가 지나지 않아 두피가 기름지고 가렵거나, 긁으면 각질과 염증이 나타나는 증상이 반복된다면 지루성두피염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한 두피 예민함이 아닌, 피지선 과다 활성, 두피열 증가, 자율신경계 불균형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발생하는 만성 피부 질환이다.지루성두피염, 피지선이 많은 부위에서 염증 발...
  4. “헬 오브 더 마리아나”, 6일 사이판에서 개최 마리아나관광청과 사이판 유니티 라이온스클럽이 공동 주최하는 “헬 오브 더 마리아나 (Hell of the Marianas)” 사이클 대회가 오는 6일 (토) 사이판에서 열린다. “헬 오브 더 마리아나”는 마이크로네시아 지역에서 가장 도전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사이클 대회로 알려져 있다. 총 100km 코스에는 약 1,490 미터의 상승 고도가 포함돼 ...
  5. 유나이티드 항공사, 서울-뉴욕(뉴어크) 직항 노선 항공권 판매 개시 유나이티드 항공사(United Airlines, UAL)는 서울 인천(ICN)–뉴욕 뉴어크(EWR) 직항 노선 취항에 따라 항공권 판매를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항공권은 유나이티드 항공사 웹사이트(united.com), 한국 예약센터(02-751-0300), 또는 여행사를 통해 예매할 수 있다. 신규 노선은 2026년 9월 5일 취항 예정이며(정부 승인 조건), 유나이티드는 서울–뉴욕 간 ..
  6. 가슴 확대 수술 후 코트로 돌아온 오시앙 도댕 한때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단식 세계 랭킹 46위까지 올랐던 프랑스 선수 오시앙 도댕(29)이 가슴 확대 수술 이후 다시 코트에 복귀한 데 이어, 유료 플랫폼 ‘온리팬스(OnlyFans)’ 계정을 개설해 팬들과의 소통을 넓히고 있다.프랑스 언론 RMC 스포츠는 6일(현지시간) “도댕이 온리팬스와 후원 계약을 체결하고 독점 콘텐츠를 제공..
  7. 약물없이 적색 OLED로 알츠하이머 치료가능 국내 연구진이 약물 없이 빛만으로 인지 기능을 개선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OLED 색상을 규명했다. 이번 연구에서 개발된 OLED 플랫폼은 색·밝기·깜박임 비율·노출 시간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어, 향후 개인맞춤형 OLED 전자약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제시한다.KAIST는 전기및전자공학부 최경철 교수 연구팀과 한국뇌연구원(KBRI...
  8. “스타가 아니라 배우여야 한다”… 故 이순재의 마지막 일침, 배용준을 향한 날선 비평 한국 연기계의 큰 별인 故 이순재 배우가 세상을 떠나면서, 생전 그가 남긴 뼈아픈 지적들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 한 평생을 연기에 바친 장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배우의 길”에 대해 끊임없이 되묻는 존재였다. 특히 2018년 한 인터뷰에서 한류 스타 배용준을 실명 거론하며 던졌던 직설적 평가는, 오늘날 한류 시스템을 되짚는 비판...
  9. 강남구 의료관광, ‘메디컬 아시아’ 10번째 대상 수상 꿈이 모이는 도시, 미래를 그리는 강남구(구청장 조성명)가 지난 4일 열린 제15회 대한민국 글로벌 의료서비스 대상 ‘메디컬 아시아 2025’에서 ‘K-의료관광 도시브랜드 기초자치단체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2010년 첫 수상 이래 통산 10번째 수상으로, 강남구는 명실상부한 의료관광 1번지로서의 위상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ls.
  10. 파리 라발레 빌리지, “퍼스널 쇼핑 스위트” 새롭게 오픈 파리 인근에 자리한 글로벌 쇼핑 여행지인 라발레 빌리지 (La Vallée Village)가 25주년을 맞아 최근 프리미엄 쇼핑 공간인 “퍼스널 쇼핑 스위트”를 새롭게 오픈했다. 약 91평 (300㎡)규모의 총 8개의 스위트룸으로 구성된 이 공간은 퍼스널 쇼핑 서비스 (Personal Shopping Service)만을 위해 설계됐다. 이 곳은 라발레 빌리지가 추구해온 “...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