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우영 작가/사진=부천시
만화 검정고무신의 작가 고(故) 이우영.
그가 생전에 끝내 마주하지 못했던 판결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내려졌다. 그리고 그 판결은 창작자의 편에 섰다.
대법원은 출판사 측이 주장해 온 계약상의 독점권을 받아들이지 않고, 원작자의 권리를 인정했다. 7년간 이어진 법정 다툼의 끝에서, 이우영 작가의 유족은 마침내 승소했다.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 8일 형설출판사의 계열 캐릭터 업체 형설앤과 장 모 대표가 유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는 원심 판결에 중대한 법리적 오류가 없다고 판단해,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절차다.
이 결정으로 “형설앤 측이 유족에게 4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2심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대책위는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개인 간 분쟁이 아니라, 오랫동안 방치돼 온 창작자 권리 보호의 공백과 불공정 계약 구조를 드러낸 상징적 사례”라며 “대법원의 결정은 기존 판결의 법적 정당성을 다시 확인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국민 만화의 그늘, 계약이라는 이름의 족쇄
‘검정고무신’은 196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초등학생 기영이와 중학생 기철이, 그리고 그 가족의 일상을 따뜻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1992년부터 2006년까지 ‘소년챔프’에 연재되며 세대를 넘어 사랑받았고, 한국 대중문화의 한 장면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작품의 인기 뒤에는 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이우영 작가는 2007년 형설앤 측과 ‘작품과 관련한 일체의 사업권과 계약권을 출판사에 양도한다’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에도 그는 자신의 캐릭터를 그리며 창작을 이어갔지만, 출판사는 2019년 “계약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이 작가는 2020년 저작권 침해 금지를 요구하는 반소로 맞섰다.
뒤집힌 판결, 그리고 너무 늦은 정의
1심은 출판사의 손을 들어주며 유족이 74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은 이를 뒤집었다. 재판부는 형설앤과 이 작가 간의 기존 사업권 계약 자체가 유효하지 않다고 보고, “형설앤은 ‘검정고무신’ 캐릭터를 사용한 창작물의 생산·판매·반포를 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결국 대법원은 이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보며 상고를 기각했다.
그러나 판결이 확정되기까지의 시간은 너무 길었다. 양측의 극심한 대립과 재판 지연 속에서, 이우영 작가는 2023년 3월 세상을 떠났다. 그는 끝내 법정에서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순간을 보지 못했다.
이번 판결은 한 작가의 사후 명예 회복을 넘어, 한국 창작 생태계에 던지는 질문이다.
계약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리고 창작자의 권리는 어디까지 보호받고 있는가.
늦었지만, 법원은 답했다.
‘검정고무신’은 계약의 소유물이 아니라, 창작자의 작품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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