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너드 로너/사진=구글
“텔레그래프, 텔레폰, 그리고 텔어우먼(여자에게 말하라).”
입소문을 믿었던 한 남자는, 평생을 여성의 아름다움을 믿으며 살았다.
세계 3대 화장품 제국, 에스티로더를 만든 주인공, 레너드 로더가 미국 현지시간 6월 15일, 뉴욕 자택에서 가족의 곁을 지키며 눈을 감았다. 향년 92세.
어머니의 부엌에서 시작된 브랜드
레너드의 이야기는 1946년, 어머니 에스티 로더가 작은 부엌에서 만든 네 개의 스킨케어 제품으로부터 시작된다. 화장품이 사치품이었던 시절, 그녀는 직접 미용실을 찾아다니며 손등에 크림을 발라주며 제품을 알렸다.
그로부터 12년 후, 아들 레너드는 가족 회사에 본격적으로 합류했고, 1972년 CEO가 되어 본격적인 도약의 시대를 열었다. 그의 시대가 시작되자, 연 매출 80만 달러짜리 가게는 40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났다.
이미지=구글
불황 속 ‘립스틱’을 발견한 남자
레너드 로더가 남긴 가장 유명한 유산 중 하나는 바로 ‘립스틱 지수’다.
2001년 9·11 테러로 경제가 얼어붙었을 때, 그는 립스틱 판매가 오히려 11% 증가한 것을 주목했다.
“경기가 나쁠수록, 사람들은 비싼 옷 대신 립스틱을 산다.”
화장은 사치가 아니라, 작은 위로가 되는 선택이었다.
그는 대공황 때조차 화장품 판매가 증가했던 통계를 근거로, 이 이론을 세웠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소비심리를 꿰뚫는 경제지표로 불린다.
‘체험’이 먼저다… 화장품 업계의 문화를 바꾼 사람
레너드는 업계 최초로 샘플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고객이 매장에서 제품을 체험하고 나서야 마음을 연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는 거대한 광고 없이도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는 가장 인간적인 전략이었다.
하나의 브랜드에서 세계로
레너드는 단일 브랜드에 머무르지 않았다.
1960년대 ‘아라미스’, ‘클리니크’로 영역을 넓힌 그는 1990년대부터 M&A의 귀재가 된다.
맥(MAC), 바비 브라운, 라 메르, 아베다, 조 말론…
그가 손을 댄 브랜드는 어느새 전 세계 150개국에 진출한 25개 브랜드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나눔이다"
그는 단지 비즈니스맨이 아니었다. 예술 수집가이자 자선가로서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2013년에는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등의 작품이 포함된 약 1조 3,600억원 규모의 입체파 미술품 컬렉션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했다.
그는 CBS와의 인터뷰에서 마지막 질문을 받았다.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기억했으면 좋겠습니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경청했고, 친절했으며, 다른 사람들을 도왔던 사람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