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4월 30일, 사이공은 무너졌다. 베트남 전쟁의 종전과 함께 남베트남이 붕괴되고, 수도 사이공(현 호찌민)은 포성과 아수라장이 뒤엉킨 거대한 난민 수용소가 되어버렸다. 미군은 ‘프리퀀트 윈드 작전’을 발동해 헬기를 통한 대피 작전을 개시했지만, 시민과 외국인, 패잔병이 뒤엉킨 대혼란 속에서 작전은 큰 난항을 겪었다.
당시의 긴박하고 절망적인 현장은 이후 수많은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통해 재구성됐다. 특히 미국 영화 '지옥의 묵시록'(1979)은 베트남전의 광기와 혼돈을 상징적으로 그려냈고, 한국 SBS창사 3주년 특집극 '머나먼 송빠강'(1993)은 전쟁의 상흔이 남은 베트남을 통해 당시 참혹했던 상황을 냉정히 조명했다. 사이공 붕괴는 단순한 한 도시의 몰락이 아니라, 한 시대 전체가 무너지는 상징이었다.
1975년 사이공을 탈출하는 사람들이 주 베트남 미국대사관의 헬기에 탑승하는 모습/사진=구글
이런 절망적 상황 속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전례 없는 결단을 내렸다. 베트남에 남은 한국 교민과 대사관 직원, 그리고 한국과 연을 맺은 현지인들을 철수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이름 없는 작전이 바로 ‘십자성 작전’이다.
『1975 사이공 대탈출』(하다출판, 이문학·정호영 공저)은 이 감춰진 작전의 전말을 복원해낸다. 해군 작전과장이었던 이문학 예비역 중령의 생생한 증언과, 국방 전문 기자 정호영 작가의 치밀한 자료 조사로 만들어진 이 책은, 단순한 전쟁 기록을 넘어 국가와 국민 사이의 약속을 다시 묻는 작업이다.
파견된 두 척의 상륙함(LST)은 극도의 보안 아래 사이공으로 접근했고, 미군 작전과도 은밀히 조율해 1,902명의 한국인과 베트남 피란민을 구출했다.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은 이 작전은, 한국 해군 사상 유례없는 기적이었다.
1975년 계봉함이 한국 교민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베트남을 향해 출항하는 모습/사진=구글 베트남전, 잊힌 전쟁의 그림자
이 책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베트남전 파병을 둘러싼 대한민국 현대사 전체를 되돌아보게 한다. 미국 영화 '플래툰'(1986)이 보여준 병사들의 고통과 회의, 한국 영화 '알포인트'(2004)가 그려낸 심령적 공포는 모두 베트남전이 남긴 깊은 상처를 상징한다.
대한민국은 1960~70년대 베트남전에 대규모 파병을 단행했고, 이는 단순한 군사 참여를 넘어, 당시 경제 개발 자금 확보와 한미동맹 강화라는 전략적 목표와 직결돼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파병 장병들은 고된 전투뿐 아니라, 귀국 이후에도 사회적 냉대와 무관심이라는 이중 고통을 겪었다.
『1975 사이공 대탈출』은 이러한 복합적 맥락 위에 십자성 작전이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교민 철수라는 긴급 임무는 외교적 민감성을 극복해야 했고, 미국의 눈치를 보아야 했으며, 무엇보다 절망에 빠진 이들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 군인의 사명을 요구했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사진=구글국가의 결단, 군인의 사명
책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출항이 결정된 과정, 해군 지휘부의 판단, 사이공 현지 대사관의 긴박한 대응, 미군과의 협조 및 갈등까지 세밀하게 복원해낸다.
미국은 사이공 철수를 헬기 작전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지상에서의 피란민 이동은 스스로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틈을 대한민국 해군이 메웠다. 사이공 대사관과 해군 수송팀은 간신히 남은 틈을 파고들어, 교민과 피란민을 포탄이 떨어지는 도시에서 군함까지 이송했다.
국가가 국민을 위해 이처럼 단호히 움직였던 사례는, 이후 2021년 아프가니스탄 '미라클 작전', 2023년 수단 '프라미스 작전' 등 재외국민 철수 작전의 선례로 자리 잡았다. 십자성 작전은 대한민국 해외 위기 대응 체계의 출발점이었다.
머나먼 쏭바강의 한장면/사진=구글
십자성 작전은 철저히 은폐됐다. 사이공에 잔류한 한국 공관원들과 남은 베트남인들에 대한 외교적 부담,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신중한 조치였다. 결국 이 위대한 작전은 군사기밀로 지정되어, 2006년까지 세상에 드러나지 못했다.
『1975 사이공 대탈출』은 이 억울한 침묵을 깨뜨린다. 참전 장병들의 명예를 복원하고, 역사의 공백을 메운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 이들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제시한다.
하다출판사 관계자는 이 책에 대해 “단순한 군사 작전 기록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 사이의 약속을 지켜낸 한 시대의 답변”이라고 말했다. 책은 과거의 기록을 넘어, 지금 우리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
국가는 위기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감수할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희생과 결단을 잊지 않고 있는가.
『1975 사이공 대탈출』은 전쟁의 참혹함을 넘어, 국가의 본질을 다시 묻는 책이다. 이 숨겨진 승리는 이제야 비로소,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살아나기 시작했다.
하다출판사 관계자는 “이 책은 단순한 전쟁 기록이 아니라, 국가가 위기 속에서 국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시대적 답변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 HadA(하다)는 (주)늘품플러스의 대표 출판브랜드이며, 2004년 사업을 시작한 이래, 깊이 있는 콘텐츠와 기획력으로 다양한 분야의 도서를 선보여온 출판사이다. 대표 브랜드인 ‘HadA(하다)’와 ‘늘품플러스’ ‘책밭’을 중심으로, 교육·인문·사회·정치 등 다양한 주제의 단행본 210여 종을 출간해 왔으며, 창의적이고 실용적인 콘텐츠를 통해 사람과 사회를 연결하고, 지식의 가치를 넓혀가고자, 독자들에게 통찰과 공감을 전하는 책을 꾸준히 만들어가고 있다.